근원: https://www.bertha-dudde.org/ko/proclamation/4322
4322 파티마에 대해 읽은 후.
1948년 6월 4일: 책 51
쉽게 믿는 사람들의 시선을 다양한 종류의 현상으로 흐리게 하는 일은 악한 영의 역사이다. 이런 현상들은 오류와 진리가 아닌 것을 확산하기에 적합한 것들이고, 이미 존재하는 잘못된 가르침을 강하게 하고, 사람들을 올바른 길에서, 직접 나에게 향하는 길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들이다. 이런 역사를 깨닫는 일은 깨어난 사람에게는 쉽다. 그러나 이미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고, 눈이 먼 인도자의 안내를 받는 사람에게는 어렵다. 눈이 먼 인도자는 자신 스스로 모든 지식이 부족하고, 진리를 갈망하지 않고, 영적인 내용의 기원을 확인하지 않고 받아드린 사람이다.
거짓된 가르침의 사슬은 다양한 잘못된 개념들로 만들어졌다. 거짓된 가르침을 대변하는 사람은 거짓 가르침을 강하게 하기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한다. 왜냐면 그들이 추구하는 일이 빛을 전해주는 일이 아니고, 사람들을 영의 어두움 속에서 머물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큰 불의이다. 그러므로 나는 끊임없이 나의 순수한 가르침을 대변하는 사람들을 그들 가운데로 보낸다. 내가 보낸 사람들은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항하여 나서고, 이웃 사람들을 깨우치려고 노력한다.
나의 계시는 절대로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는 어린 자녀들에게 알리는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고, 모든 계시는 모든 사람의 축복을 위해 전파되야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왜냐면 나는 단지 한 사람의 입술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기 위해, 한 사람의 입술을 택하기 때문이다. 나는 절대로 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 침묵을 지키라고 명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에게 내 뜻을 이웃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명을 내릴 것이다. 내 뜻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일이고, 사랑을 통해 축복되게 되는 일이다.
내 뜻이 성취시키지 않으면, 사람은 온전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고, 그에게 붙어 있는 죄짐을, 그가 사랑이 없는 행동으로 끊임없이 증가시키는 그의 죄짐을 없앨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절대로 자신의 죄를 넘겨받거나 속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었다. 사람이 실제 모범적인 사랑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의 가르침을 전하고 이웃 사람들에게 사랑을 일깨우면서, 예수의 구속사역에 동참할 수 있다. 사람은 더 나아가 사랑의 삶을 사는 모든 사람이 자신 안에 가진 순수한 진리인 복음을 전하는 일을 통해 오류에 빠진 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함께 역사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사랑하는 심장으로 드리는 중보기도를 통해 이웃 사람에게 힘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웃사람의 의지가 항상 모든 힘의 흐름을 받아드리려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왜냐면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혼에 대한 책임이 있고, 이 책임을 그에게서 면하게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공의에 의문이 제기될 것이고, 모든 사람이 즉시 구원받았을 것이다. 왜냐면 사랑의 빛의 존재들은 항상 그들의 사랑을 불행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베풀고, 진실로 그들의 힘은 모든 사람을 축복되게 만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모든 각각의 사람들이 스스로 나를 찾아야만 한다. 그는 자신의 죄짐을 깨닫고, 죄짐을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는 스스로 영원에 영원한 시간을 통해 자신을 속죄해야만 하거나, 또는 의식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인정하고,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을 받아야만 한다.
(1948년 6월 4일) 사람의 이웃사람을 향한 사랑이 실제 이웃 사람의 회심을 위해 간청할 수 있다. 그러나 영이 편에서 이웃에게 광범위한 지원을 하여, 빛의 존재에 의해 그가 원한다면, 그가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삶의 상황에 처하게 하는 정도로 역사가 일어나고, 그의 생각이 올바르게 삶을 사는 사람에게 향하게 하고, 중보기도를 받은 사람에게 증가된 힘이 제공되는 정도로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나 그가 이힘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전적으로 그의 의지에 달려 있다. 그의 죄가 이제 이 땅의 형제 자매들의 사랑으로 속죄될 수 있다는 견해는 잘못된 견해이고, 내 가르침을 오해한 것을 나타낸다. 내 가르침은 단지 전적으로 선명하게 제공되었지만, 그러나 인간의 잘못된 생각으로 여러차례 순수하지 못하게 된 오염이 되었다.
사랑이 중보기도의 근거라면, 중보기도는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 채로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효력은 다르게 나타난다. 왜냐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죄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깨달음을 주는 일은 항상 오류로 인도하는 일이다. 그런 깨달음은 절대로 양심적인 시험을 견딜 수 없고, 내가 이 땅에 전해준 진리와 조화를 이룰 수 없고, 악한 영의 속이는 역사이다. 약한 영은 쉽게 믿는 사람들의 잘못 인도받은 생각에서 좋은 번식지를 찾는다. 왜냐면 내가 나타나는 곳에서 나는 화려하고 광나게 오지 않기 때문이고, 그러나 나를 깨닫기 원하고, 선하고 순수한 생각을 가진 모든 사람이 나를 깨달을 수 있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멘
번역자 마리아, 요하네스 박